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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이집트문명 피라미드의 시작

by PPNN 2020.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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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문명 포스팅을 시작합니다

이번 이집트문명 포스팅에서는 피라미드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처음 생긴 파라미드는 지금의 모양과 많이 달랐습니다. 이런 피라미드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이집트 중왕국 시대의 이집트가 어떠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집트문명 피라미드의 시작

 

이집트문명 피라미드의 변천사

이집트 왕조시대에는 왕의 무덤을 집처럼 꾸며졌습니다. 이 무덤에 영생전(永 : 길다 영, 生 : 살다 생, 殿 : 대궐 전)이라는 이름도 붙여졌습니다. 왕은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고자 사치스러운 예술품을 많이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왕이 죽을 때 땋에 묻었습니다. 

 

하지만 왕의 예술품을 노리는 도굴꾼들이 묻어진 예술품을 파내고 훔쳐가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자 도굴을 막기 위해 왕의 시신과 예술품을 땅 속 깊이 묻고 입구를 돌무더기로 덮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를 다시 집으로 가렸습니다. 

 

기원전 2700년 쯤에 이집트의 조세르 왕은 건축가 임호테프에게 왕권을 과시할 수 있는 거대한 무덤을 만들어보라고 시켰습니다. 그 전까지는 무덤을 만들 때 벽돌을 썼지만 임호테프는 석재를 썼습니다. 그는 무덤과 신전 밑에 거미줄처럼 복잡한 지하 터널망을 뚫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돌을 층층이 쌓아서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높이가 60미터나 되는 계단식 파라미드가 출현한 것입니다. 피라미드의 모양은 하루 아침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피라미드를 짓다가 무너진 경우도 있었으며, 우리가 보기에 이상한 모양의 피라미드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원전 2600년 쯤에 스네페루 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현재의 피라미드 모양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스네페루 왕의 아들인 쿠푸가 거대한 피라미드를 지었습니다. 쿠푸의 무덤을 만드는 데 20년동안 약 10만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을 했습니다.

 

정말 많은 이집트 사람들이 희생에서 쿠푸에서 무덤을 만든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자신들을 죽도록 고생시킨 왕을 잊어버리기 위해 별 볼일 없는 양치기의 이름을 따서 이 무덤을 필리티스의 피라미드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조세르부터 시작되는 파라오의 시대를 고(古 : 오래되다 고)왕국이라고 합니다. 이집트의 백성의 노동력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지방의 세력과 파라오 사이에 갈등이 점점 커져습니다. 그러다가 기원전 2200년 쯤에 혁명이 일어났고 왕이 쫓겨났습니다. 이를 제1중간기라고 합니다. 

 

중앙정부가 없는 시기가 150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테베의 멘투호테프가 이집트를 다시 통일했습니다. 이때부터 중왕국이 시작되었습니다. 중왕국은 봉건제와 비슷하게 운영되었습니다. 지방에는 영주가 있어서 그 지방을 다스렸습니다. 

 

중왕국 말기에 지방의 영주들이 서로 다투고 있을 때 기마병을 앞세운 군대가 하이집트를 침략했습니다. 말을 잘 다루는 이 군대는 코카서스 산맥 너머에 살고 있다가 기원전 2000년쯤에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다가 기원전 1780년쯤에 이집트를 침략했습니다. 이들 세력을 힉소스 세력이라고 불렀습니다. 

 

200년 동안 힉소스 세력에 지배를 받다가 기마대를 키운 테베 영주 아모세가 힉소스를 공격하여 가나안 밖으로 그들을 몰아냈습니다. 이집트로 돌아온 아모세는 자신의 숙적들을 하나 둘씩 제거해서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아모세와 후계자 아멘호테프 1세는 테베를 키우고 국가 종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파라오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군대를 키웠습니다. 이들은 직업 군인으로 왕권을 강화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집트문명 가나안

 

파라오의 제국

다음 파라오 투트모세 1세는 이집트 제국을 넓혀나갔습니다. 투트모세의 본처는 아들을 낳지 못했습니다. 이집트에 관습에 따라 그 중 누군가가 다음 파라오한테 시집을 가야했습니다. 투트모세의 딸 하트셉수트 공주는 자신의 배다른 오빠와 결혼했는데 그가 투트모세 2세입니다. 투트모세는 몸이 약했는데 결혼하지 얼마 못 가 죽었습니다.

 

하트셉수트도 딸만 낳았습니다. 이번에도 후계자는 본처가 아닌 첩의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후계자는 너무 어렸고 결국 하트셉수트가 왕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녀가 왕의 역할을 한 뒤 20년 동안 이집트는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그녀는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는데 힘썼으며 힉소스가 파괴한 기념물을 재건했습니다.

 

그녀가 죽고 왕위를 물려받은 자가 투트모세 대제라고 불린 투트모세 3세입니다.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 투트모세 3세처럼 전쟁을 좋아해서 30년동안 전쟁터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있던 도시의 카데시 왕과는 엄청난 원수사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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